속죄와 치유: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의 죽음이 육체적 질병의 치유를 보장하는가?

by | Dec 15, 2023 | Bible & Theology, Church & Ministry | 0 comments

속죄와 치유: 십자가에서의 예수님의 죽음이 육체적 질병의 치유를 보장하는가?

Dec 15, 2023Bible & Theology, Church & Ministry0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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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기독교 운동에서 이사야 53:4-6. 마태복음 8:14-17 그리고 베드로전서 2:21-25를 근거로 삼아 예수님의 속죄와 육체적 질병의 치유를 연결하는 시도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신학은 실제로 이미 전 세계적으로 발달 되었으며, 특히 제 3세계, 은사 주의 혹은 오순절파 교리를 실천하는 교회에는 이미 만연하게 자리 잡고 있는 신학입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이러한 치유 신학이 정말로 그들이 근거로서 제시하는 성경 구절들로 부터 파생될 수 있는 것인지, 만약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고 있는 ‘치유’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에 대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더 많은 질문들을 던짐으로써 무조건적인 수용이 아닌 치유 신학의 정당성에 대해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제시된 성경 구절들에 육체적 치유가 포함되고 있더라도 현재 우리에게도 그러한 치유들이 보증될 수 있는가?’, ‘예수의 속죄가 육신의 치유(회복)에 대해 부분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하더라도 (특히 종말의 때에), 기독교인들이 그러한 치유를 요구할 수 있는 것인가?’, 혹은 ‘이 치유는 오직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육신의 부활을 약속하신 예수님의 완벽한 치유를 가리키고 있는 것인가?’ 

먼저 우리는 치유 신학과 속죄 신학의 관계를 고려할 것입니다. 속죄 신학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만이 현시대와 다가올 마지막 날의 ‘치유’의 본질과 범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넓혀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속죄와 치유: 현대 이슈들과의 갈등 

저는 10대 후반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경험하기 전까지 줄곧 개신교 회중 중심의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호주 오순절 교회를 출석하기로 결심한 후, 시간이 흘러 20대 초반에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출석하던 오순절 교회에서 육신의 치유가 이미 예수님의 속죄 사역에서 보증됐다고 주장하며, 소위 믿음만으로 육신의 질병을 치유받을 수 있다고 성도들을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제 신앙에 큰 혼란을 가져다주는 사건이 되었습니다.

교회에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들이 충족된다는 전제 아래 육신의 치유를 보장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1) 병든 자 개인의 신앙고백, (2) 회중들의 신앙고백, (3)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부여받았다고 믿는 카리스마파 지도자들의 영적 은사, (4) 예수님의 속죄 사역, (5) 성경에서 말하는 치유에 대한 약속. 비록 어린 나이에 불과했지만, 저는 그들이 주장하는 치유에 관한 교리를 성서적 증거와, 현대 의학 그리고 인간의 실제적인 경험과 결부시켜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1990년 초, 두 명의 오순절파 기독교 리더가 암이라는 병명으로 같은 해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분들은 모두 하나님이 현 삶으로부터 그들의 질병이였던 암을 치료해줄 것을 굳게 믿고 또 그렇게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 이후 교회에 남은 회중들은 혼란속에서 그들의 죽음을 이해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의 교리와 맞지 않은 일이였으므로). 그 사건을 계기로, 저는 과연 성경이 속죄와 육신의 치유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연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몇몇의 오순절파, 혹은 비오순절파와 카리스마파 기독교 (은사주의를 강조하는 그룹) 운동가들은 이사야 53장 4-6절, 마태복음 8장 16-17절, 그리고 베드로전서 2장 24절을 성서적인 근거로 들어 육신의 치유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연결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이러한 신학은 복음주의 교회, 비국교회, 주요 개신교, 특히 제 3세계 (the majority world)와 카리스마적 성향을 지닌 교회들사이에서 이미 만연하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현재까지도, 이 문제와 관련되어 신학적, 성서적, 목회적 이슈들에 대해 열띤 논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떠 한 무리가 육신의 회복과 치유가 속죄에서 이미 보장된다고 주장 하는가 하면 (예: A.B. Simpson, Kenneth Hagin, and Kenneth and Gloria Copeland), 그 반대편에서는 그 개념을 거부할 뿐만 아니라, 거의 배타적인 자세로 속죄가 죄를 다루는 방법 혹은 그의 기능에만 집중합니다. (예: B.B. Warfield, Merrill F. Unger, John MacArthur, and Richard Mayhue)

물론 치유와 속죄에 대한 다양한 시각 속에서, 역사는 이미 그들의 관련성을 지지해 줄 많은 증거들을 확보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로마 카톨릭 신자들이 종종 속죄 교리의 중심은 치유에 있다고 생각하던 것과 교부 시대에는 실제로 치유를 기반으로 형성된 많은 속죄 이론이 있으며 (이론이라고 부르기에 다소 과장됐다고 볼 수도 있음), 더 나아가 이러한 교리는 동방 정교 신학 (Theosis) 에도 포함됩니다.  동방 정교 신학의 성화 과정 (Theosis) 은 영적 치유를 포함한 전반적인 치유와 변화를 다룬 신학으로, 몸과 마음의 정화 (katharsis), 영적 묵상과 조명 (theoria), 그리고 성화 과정 (theosis)을 통해 하나님과의 연합과 그를 닮아가는 모든 성화의 과정에서 치유를 발견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더 나아가, 속죄에서 영적인 치유를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는 신학의 선조인 아타나시우스, 클레멘트, 이레네우스 및 오리겐 등에게서 찾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모든 역사적 사실들을 토대로 또 다른 질문을 던졌습니다. “과연 제시된 세개의 성경구절을 통해 치유 신학을 발전시킬 수 있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말하고 있는 치유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밀라드 에릭슨 (Millard Erickson)은 속죄 안의 치유를 뒷받침할 논증들을 소개했습니다. 속죄에서부터 육체적인 치유가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많은 학자들은 병의 시초가 인간의 죄로 인한 타락의 결과로 시작된것을 감안했을때, 죄가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해 해결됐듯이, 같은 논리로서 인간의 죄로 인한 모든 타락의 결과 (즉, 육신의 병을 포함함)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이사야 53: 4-6에서 말한거와 같이) 마태복음 8장 16-17절에서 복음서의 저자인 마태가 예수님의 병 고침 행위를 죄의 역사와 연관시켜 설명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심지어 질병 (또는 그중 일부)을 죄의 직접적인 결과와 연결했습니다 – 이러한 견해는 고대 예수님의 시대에 만연하게 깔려있던 풍조로, 예수님의 속죄 사역과 부활이 가져다주는 모든 축복(결과)은 죄와 질병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에릭슨은 인간의 타락이 병의 기원에 영향을 준 것은 인정하나, 예수님은 질병과 개인의 죄를 명확하게 연결시키지 않으셨으며, 그의 병 고침 행위가 자주 죄의 용서와 관련되어 있지도 않다고 주장했습니다. 다시 말해, 몇몇 학자들에 의해 생겨난 질병과 개인의 죄, 치유와 속죄의 밀접한 관련성은 성경적 자료에 의해 정당화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1]

그렇다면 이사야 53장 4-6절, 마태 복음 8장 14-17절, 베드로 전서 2장 21-25절에서, 우리는 속죄와 육신의 치유의 관계에 대해 어떠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요?

[bctt tweet=”속죄와 육신의 치유의 관계에 대한 여러 가지 견해들.” username=”GrahamJGHill”]

이사야 53 4-6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존 오스왈트(John Oswalt)는 이사야의 주요 주제를 종의 도 (섬김의 도) 라고 주장했습니다: “구세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사람들의 종의 도 (섬김의 도)는 세상에 드러났다. 이 주제는 이사야의 첫 부분 2장 1-5절에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다.”[3] 그는 이사야 1-39 장 에서는 종의 도 (섬김의 도)에 대한 신학적 기초를, 40-66 장에서는 종의 도 (섬김의 도)의 소명에 대해, 49-55 장은 하나님의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야 하는 변화에 대해 다루었다고 주장했습니다 – “만약 하나님의 약속이 계속되고 (48: 18-19), 죄를 지은 이스라엘이 참된 주의 종으로 거듭난다면, 그 가운데 관계와 인격의 변화들이 일어날 것이다.”[4]

존 오스왈트 (John Oswalt)에 의하면 이사야 49:1-55:13에서 말하는 종의 도 (servanthood)의 수단은 속죄입니다. 죄성으로 가득 차 깨어지고, 듣지 못하며 보지 못하는, 그리고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수 없기 때문에 (관계적인 면과 인격적인 면 모두를 포함한다), 하나님은 그들을 대신하여 고난받을 하나님의 종을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대속물로써 바쳐진 하나님의 종을 통해 치유와, 구원 및 속죄를 실현했습니다. 하나님의 종, 그는 바로 이상적인 이스라엘,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위해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이스라엘 안에서 그들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존재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5] 그는 또한 옮겨짐 ‘carrying’ 과 감내 ‘bearing’라는 단어들을 씀으로써 하나님의 종이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한 대체적 (대속적) 성격의 이해를 돕고있다고 주장했습니다 …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은 사람들과 함께한 것이 아닌 그들을 위함이었다.”[6] 예수 그리스도는 이스라엘을 위해 그들 스스로가 보호 할 수 없는 것들을 보호하며,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을 위해 부당한 벌을 받으심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에 속할 수 있도록 만들었으며, 더 나아가 그들에게 주어질 구원의 정당성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존 골딩게이 (John Goldingay)는 이사야서 전체와 구약 전체의 맥락에서 이스라엘의 상처와 치유에 대해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맥락에서 비추어 봤을 때 이스라엘의 상처와 치유의 주된 의미는 비유적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징벌은 ‘상처’ (wounding) 의 모습으로 나타남으로써, 사람들이 상처에 대해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강조하고 있는 이사야서 1장 2-6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기서 ‘치유’는 복지를 뜻하는 뉘앙스를 가짐으로써 그들이 결코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는 이사야 6장 10절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레이마 애가 2징 13절에서 또한 예루살렘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을 묻는다.)” 또한, 그는 치유가 출애굽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출. 15:26, 신 28:27, 35) “하나님의 종은 치유를 가져오는 수단으로써, 이 구절들에서의 상처와 치유의 언급은 독자들이 바로 다음 그림의 중요성을 알게 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성취될 파멸된 국가의 회복.”[7]

이 구절에서 1인칭 복수 대명사의 쓰임은, 모든 인류가 하나님께 반역하며 고의적으로 악을 행하는 인간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허물과 불법을 위해 고난받으셨고, 그의 상처로 인해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으며, 비로소 치유와 용서, 그리고 구원을 경험 함으로써 끝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회복할 것입니다. 인간은 예비된 대속 제물을 받아들이고, 회개와 순종으로 그에게 나오도록 부름받았습니다. 이사야서 53장 4-6절에서 육신의 질병과 치유가 주로 비유적으로 다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질병과 치유가 인간의 죄성과 영적 구원을 언급하기 위해 비유적인 표현으로 언급되었다.), 인간의 죄성만을 다루기보다는 더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바로 실제 질병을 언급했을 수 도 있다는 것 입니다. 물론, 앞에서 살펴본 것과 같이 이사야의 주제와 의도 – 상처입고 깨어진 국가의 회복 – 과 맞지 않는 실제 육체적 질병과 치유를 뜻한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희미하게나마 나타나고 있는 육신의 질병과 치유를 인정하더라도 현재의 삶에서도 보증할 수 있냐는 질문에 대한 그 어떠한 긍정적인 해답과 증거도 찾을 수 없습니다.[8]

마태복음 8 14-17

14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 15 그의 손을 만지시니 열병이 떠나가고 여인이 일어나서 예수께 수종들더라 16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 내시고 병든 자를 다 고치시니 17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그리스도론 (기독론)은 복음서 마태복음의 중심 주제입니다. 예수님은 메시아 (Christ), 약속된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 인자, 고대하던 하나님 나라의 왕, 심판자, 구주, 신의 존재를 나타내는 매개자이십니다. 이러한 그리스도론의 목적을 가지고, 마태복음은 8장 1절 – 9장 38절에서 예수의 10가지 기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8:1-17은 질병을 뛰어넘는, 8:23-28은 자연과 귀신과 반신불수를 뛰어넘는, 9:18-34는 장애와 죽음을 초월한 예수의 권위를 보여주고 있다.”[10] 구세주 이자 왕이신 예수님은 모든 창조물과 인간들에 대해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으며, 인간은 그것을 인지하고, 순종하며, 절대적인 신의 권위를 선포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다시말해, 그의 신적 권위는 인간들로부터의 헌신과 순종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14-17에 나오는 베드로 장모의 열병과 치유의 이야기는 예수님이 구세주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한 하나의 변증론적인 특성을 띄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왕이라는 주제를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에서 그 시대 독자들과 현 독자들이 실질적으로 배울수 있는 사고 혹은 예시들 또한 존재하는데, 크레이그 키너 (Craig Keener)는 그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마태는 그의 서술의 상당 부분을 예수님을 치유자로 묘사하는데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독자들이 계속적으로 예수님을 그들의 치유자, 또는 하늘과 땅의 모든것에 권위를 초월하신 분으로 받아들이고 경험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28:18; cf. 9:35–38; 10:1; Rom 15:16; 1 Cor 12:9; 2 Cor 12:12; Gal 3:5; Jas 5:14–15)”[11]

속죄와 육체적 질병의 치유는 아마 마태가 서술한 이 이야기의 주된 주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기록된 다른 이야기들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마태는 예견된 왕이 소외되고, 부서지고, 하찮으며, “깨끗하지 않다” 라고 여겨지는 모든 것들에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은 바로 이러한 주제를 이어받아 나병환자 (8:1–4) (즉, 신체적 질병으로 인해 소외된 자들), 비유대민족이였던 백부장 (8:14–15) (즉, 인종문제로 차별받는 자들), 한 여성 (8:14–15) (즉, 성별로 인해 차별된 자들)과 어울리며, 그들을 치유하고,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보살피시는 예수님을 묘사했습니다. 크레이그 블롬버그 (Craig Blomberg)는 이러한 사례들이 마태복음 8장의 목적을 해석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소라고 주장했습니다. “종교의 관례와 관습 상, 예수님을 불결하다고 여겨질 수 있는 세 가지 사례를 제시 함으로써, 마태는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을 정결하게 하기 위해 얼마나 기꺼이 자신을 부정했는지 강조하기 원했다. 따라서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등 물리적 질병의 제거는 하나님과 주변 이웃과 나눌 수 있는 사랑을 배척하는 인간이 만든 여러 영적 구별의 제거보다 덜 중요한것으로 여겨진다.”[12] 그러므로, 우리는 “그는 우리의 연약함을 짊어지고 우리의 질병을 옮기셨습니다.” 라는 구절에 육신의 치유를 언급한 글쓴이의 숨겨진 의도를 주목할 이유가 있습니다. —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과 인간에 대한 권위를 가지신 왕으로써, 소외된 자들에 대한 치유와, 깨끗함 (회복)에 중대한 관심을 드러내셨다. (그 결과, 그와 그의 나라의 참된 본질을 드러냄.) 

마태복음 8장17절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해석되어질 수 있습니다: (1) 예수님이 대리자로써 십자가에서 못박혀 돌아가셨을때, 인간의 질병을 옮기셨다. (예: A.B. Simpson, founder of the Christian and Missionary Alliance, and some Pentecostals and neo-Pentecostals),[13] (2) 이사야 53:4에서 인간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듯이, 마태는 이 구절을 말 그대로 마태복음 8장에 나와있는 예수님의 치유사역에 적용했다. (예: Rowland V. Bingham, The Bible and the Body),[14] (3) 이사야 53:4과 마태복음 8:17은 모두 “인간의 죄 보다는 실제 육체적 질병 및 정신적 괴로움”을 언급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동정을 보내는 것이지, 이 모든것을 옮길것이라는 뜻과는 거리가 있다. (예: Millard Erickson, Christian Theology),[15] (4) 이사야 53:4과 마태복음 8:17, 모두 최종적으로는 비유의 표현으로 인간의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다. (e.g. Don Carson, Matthew: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질병을 파괴한다는 토대 그 자체로써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의 기능을 띄고 있다. 예수님의 치유사역은 그 사역 스스로를 넘어 궁극적으로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다.”)[16]

개인적인 견해로써, 두 번째, 세 번째 그리고 네 번째 해석을 섞어놓았을 때 가장 적절하다고 보여집니다: (1) 이사야 53장 4절은 쉽사리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바로 다음 절이 질병이 아닌 명확하게 죄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2) 단지 비유적인 표현으로 죄를 짊어지는 것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질병도 다룬 듯이 보인다. 밀라드 에릭슨 (Millard Erickson) 이 말했듯이 치유사역에서 나타난 예수님의 동정심은, 신학적 중심을 속죄에서 예수의 성육신으로 옮기고 있다. 또는 속죄와 성육신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치유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이는 듯하다 . (어떻게 이것이 이루어지며, 우리가 치유를 통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이후 언급될 것이다.) (3) 마태는 그의 서술에서 예언의 성취를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는, 자주 구약 서신을 인용하여 설명했다. (e.g. 마태 2:15 (호세아 11:1)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마태 2:18 (예레미아 31:15)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따라서, 육체적 치유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지만 또한 보증하지도 않는, 치유의 본질과 범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대 시켜주고 그의 속죄와 성육신에 대한 관계 또한 확립해주는 세 가지 관점의 적절한 조합이 가장 타당한 해석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습니다.

돈 카슨 (Don Carson)은 마태복음 8장 17절에 대해 이와 같이 주장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 17절은 치유에 대한 요구를 정당화하는데 쓰일 수 없다. 이 구절과 다른 구절들은 속죄에는 치유가 있다고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설령 기독교인들이 이 땅에서 육체적 치유를 받지 못하더라도, 속죄를 통해 부활한 육체는 이미 약속되어있다는 뜻이다. 신약 저술가들의 관점에서, 십자가는 신도들에게 나타날 수 있는 모든 기초적인 축복을 보증한다; 하지만 ‘모든 혜택이 현재의 삶에서 요구 될 수 있다’, 혹은 ‘인간이 부활의 육체를 가질 수 있도록 명령하는 권리나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옳지 않다. 특별한 축복의 요구에 대한 정당성은 오직 성서적 증거를 기반으로 입증되었을 때어야만 유효하다.”[17]

크레이그 키너 (Craig Keener) 또한 문제에 대한 처방을 다음과 같이 내렸습니다. “드디어, 마태는 치유사역이 예수의 희생을 치름으로써 완성된, 하나님이 계획한 예수의 사명 중 일부라는 것을 청중들에게 알렸다 (8:17) … 이사야 53장 그 종의 죽음은 선지자들로 인해 빈번히 사용됐던 비유적 표현으로써 (53:4–6, 8–9; cf. 벧전 2:22–25) 결국 죄로 물든 국가를 구원해 낸다고 설명하고 있다. (13:15; Is 6:10; 57:18; 렘 3:22; 6:14; 8:11; 14:19; 호 14:4; cf. 1QH 2.8–9; Sir 28:3; Pesiq. R. 44:8). 그러나 더 넓은 맥락으로 이사야는 하나님의 종말론 적 관심이 그의 백성의 온전한 육신의 회복에 있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것은 이사야서 53:4-5에서 육체적 치유를 암시한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며, 결론적으로 종의 고통이 이스라엘을 회복시키며 종말론적으로 죄를 통해 잃어버린 유익들, 즉 병의 회복을 포함한 모든 유익을 회복시킬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태가 이사야 53장 4절을 인용함으로써 예수의 치유 사역이 결국 종으로서 수행할 임무의 성격을 완성시킨다는 것을 입증했으며, 더 나아가 예수님의 삶의 궁극적 대가를 치름으로써 깨어진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것이라는 것을 주장했다. 또한, 그는 마태 스스로도 육체적 병 고침이 영적 치유에 관한 원리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고 말했다. (9:5-7, 12, 13:15) 다른 사람들의 연약함을 짊어지는 예수의 희생은 제자들의 본보기가 됐을 것이며, 실제 초기 기독교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게는 사례가 됐다. (롬 15 : 1-3, 벧전 2 : 20-24)”[18]

마태복음 8장 14-17절에 나오는 베드로 장모의 열병과 고침 받은 이야기는 예언된 구원자, 약속의 성취, 권위 및 소외된 자들을 향한 관심 등 예수님의 성격이 두드러지게 그려진다는 점에서 매우 그리스도론 (기독론) 적 입니다. 심지어 이사야 53장 4절 인용조차도 그리스도론 (기독론) 적 장치로써, ‘약속의 성취를 의미하는 상징적인 인용문’을 사용함으로써 ‘이 치유에서 일어나는 일이 바로 구약의 성취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19]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으로써, 그의 사역은 치유와 구제, 속죄 그리고 그의 왕국의 가치와 우선순위들을 통한 현 세상의 재정립입니다. 예수님은 문둥 병자, 병든 자들, 소외된 자들, 고통에 처한 인류를 확인했습니다.[20] 이 이야기들은 단순한 신체적 질병의 치유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인류에 대한 연민에 관한 것입니다. “이사야 53장 4절에서 현재의 질병에 대한 치유를 보장할 수 있는 근거는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이 보장하는 것은 더 크고 놀라운 것으로 종말의 때에 예외 없이 모두에게 치유를 제공할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 시대에 고침받은 사람들과, 현시대 치유를 경험한 모든 사람들은 다시 말해 최종 구원에 대한 첫 결실들로, 첫 지불액과 같다고 말할 수 있다.”[21]

베드로전서 2 21-25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22. 그는 죄를 범하지 아니하시고 그 입에 거짓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이에게 부탁하시며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가 감독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 

베드로전서의 중심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도입니다. 종교적 박해를 마주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하고 힘을 실어주기 위해 쓰인 것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소명, 소망 및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문제들에 대해 안내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1절-25절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을 닮아가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에 중점이 맞춰져 있는데, 가장 큰 이유로는 예수님이 우리가 제자로써 따라야 할 모범을 남기고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홀로 충직, 순결, 정직과 신뢰로 완성된 고난을 성취하심으로써 온전함의 본보기가 되셨습니다. 맞대어 싸우지 아니하시고, 정의로운 심판자 되신 그분께 자기 자신을 위탁함으로써 인간을 위해, 인간의 죄를 지고, 인간을 고쳐 그와 닮아 의로운 삶을 살게 하기 위해, 잃어버린 모든 영혼의 담당자 되시며 목자 되신 분께 돌아가게 하기 위해 이 모든 것을 감당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이 많은 것들에 모범이 되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단순한 본보기가 아닌 우리의 구세주, 치료자, 목자 혹은 영혼의 담당자로 나타나셨습니다. 즉 다시 말해, 그는 단지 본보기로써 고통당하시고 돌아가신 것이 아닌, 우리의 구주이시자 구원자로써 이 모든 일을 이뤘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잘못된 길로 갔을지라도, 예수님은 인간을 하나님께 다시 데려오는 역할을 충실히 행하셨습니다. 인간이 끝없이 배반하고, 죄를 짓고, 의로운 길로 가지 못하더라도, 그는 고치시고 회복하시며, 그의 구속 사역과 부활을 통해 인간에게 의로움의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었지만, 인간이 받을 자격 없는 한량없는 자비와 은혜, 의로움과 치유를 선물을 주심으로써 구원의 대상이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앞서 본 것과 같이, 베드로전서 2장 21절-25절의 주된 내용은 단순한 신체적 질병의 고침이 아니었습니다, 더 나아가, 이 구절은 육신적 치유와 전혀 관련이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1-25절의 주된 내용은 그리스도를 닮는 것에 관한 것으로 그가 고통 가운데에서 보여준 진실함을 따르는 것이며, 죄의 속박과 저주로부터 도우시며 의와 자비, 그리고 치유의 근원이 되신 예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다음의 성경 구절이 말하고 있듯이 말입니다. “그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즉, 이사야와 같이, 베드로전서 2장 25절에서 육체적 치유는 기독교 개종을 비유하기 위해 사용됐습니다. (복음서, 막 2:17; 눅 4:23).”[22] 예수님은 대속물로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는 고침 받고 죄와 불순종, 그리고 불의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수 있게 되었습니다. 무고한 예수님의 고통으로 우리의 죄를 짊어지셨고 고통 가운데 견디며 인내하는 표본이 되셨습니다. 속죄의 죽음은 인간들이 고통 가운데 보여야 할 모범을 제시해줬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과 불의로 가득한 마음에 대한 해결책이기도 합니다.[23] 피터 데이비드 (Peter Davids)는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예전의 방식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대신, 우리의 삶은 “의”, 즉 베드로가 언급해온 윤리적 삶의 방식으로 재형성될 수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원은 미래의 심판이나 죄책감으로부터의 완벽한 자유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죄로 묶여있던 삶으로부터의 해방이자 하나님이 의도하신 삶을 살수 있는 자유를 보증하고 있다.”[24]

즉, 이사야 53장 4절-6절, 마태복음 8장 14절-17절 그리고 베드로전서 2장 21절-25절은 육체적 질병으로부터의 치유를 포함하고 있을지는 몰라도 현재의 삶에서도 이곳에서 언급된 치유가 일어날 것이라는 것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설령 그리스도의 속죄 가운데 치유가 분명하게 있을지언정 (현재 삶에서의 치유, 때때로 혹은 예수님 재림시의 궁극적 치유), 이 성경 구절들로 육체적 질병의 치유에 대한 요구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치유, 종말의 시작과 부활

앞서 이야기했듯이, 속죄는 (특히, 예수님의 재림시에) 육체적 질병의 치유에 대한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치유와 기적들이 요구되거나 강요될 수 없듯이, “인간에게는 부활의 몸을 요구할 권리와 힘이 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닙니다.”[25]

오직 재림의 때가 되어서야 만, 우리는 완전한 치유를 경험하고 약속된 부활의 몸을 받을 것입니다. 크레이그 블롬버그 (Craig Blomberg)는 이러한 견해를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카리스마 파는 속죄에서 신체적 질병의 치유가 가능하다는 주장을 고수하기 위해 종종 마태복음 8장 17절을 근거로 내세웠다. 예수님의 치유사역이 일관되게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지표로써 기능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우리는 때때로 질병으로부터의 기적적인 회복을 포함해 하나님의 통치권 안에 허락된 모든 축복들을 기대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한가지 주의해야할 점은 인간이 영원의 시간으로 들어가기 전 하나님의 치유와 기적에 대한 요구와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하는 행위는 하나님 나라의 미래적 차원에 대한 통찰을 잃게 만들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직 재림의 때가 왔을 때만 모든 신도들이 그들의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지금까지 예수의 시대에서 고침 받았던 모든 사람들을 요한복음 5장 1절-15절의 기록된 사실과 (그리스도는 많은 병자들 가운데 오직 한 병자를 선택하여 치료함) 견주어 보았을 때, 예수님의 선택적인 치료의 원인은 다른 병자들이 예수님께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예수님은 유사한 상황속에서도 치유사역을 삼가하신 경우가 많았지만 (막 6:1-6a; 8:11-13), 흔히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믿음을 창출해내기 위해 기적을 행하셨다. (막 4:35-41; 5:1-20). 다시 말해, 현 시대에서도 속죄의 결과 중 육체적 질병으로부터의 치유가 포함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을 행할 때와 방법을 정하시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안의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도들의 부활된 몸과 같은 완전한 치유는 궁극적으로 오직 예수님의 재림에만 가능하다.”[26]

종말의 시작은 하나님 나라가 현재와 미래의 차원에서 동시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삶,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종말은 이미 이곳에 현존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음을 선포했지만, 아직 완전하게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즉 다시 말해,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 우리 가운데 거해 있으면서도 아직 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완전하지 않다는 의미). 미래에 존재하는 최종적인 하나님 나라의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가 그의 삶,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시작함으로써 이미 현재 가운데 옮겨겨진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질병과 고통, 충돌과 죽음은 오직 마지막 완성의 때에 도달해야만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4). 존 딕슨은 (John Dickson) 그의 책 ‘예수님의 생애’에서 (the ministry of Jesus) 다음과 같이 서술했습니다, “악은 멸망하고, 연약한 인간의 육체는 회복되었으며, 모든 자연의 질서가 올바르게 세워졌다. 즉, ‘하나님의 왕국’이 작은 모형으로 그들에게 임한 것이다. 예수 시대에 일어난 기적들이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연민과 권위를 가리키듯이, 본질적으로 그들은 하나님 나라 안에서 펼쳐질 모든 것의 미리 보기와 같은 기능의 특성을 띄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이 확고하게 자리 잡을 수 있는 이유는, 이 땅의 예수님의 삶 안에서 펼쳐진 하나님의 왕국을 엿봄으로써 모든 악이 사라지고 인간이 온전하게 나으며 모든 창조물들이 회복되는 마지막 때 (재림)를 소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27]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에 존재하기에, 신도들은 자신의 죄와 불의로부터 고침 받을 수 있으며, 때때로는 실제로 육체적인 치유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가 미래에 있기에, 우리는 마지막 때에 부활의 몸인 우리의 최종적인 육체적 온전함을 고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 그가 던진 하나님 나라에 대한 메세지, 그의 열정, 죽음 그리고 부활 이 모든 것들이 이 사실을 증언하듯이, 우리는 인간의 육신을 포함한 마지막 때 모든 만물의 회복에 대해 끊임없이 관철하며 증언할 것입니다.

육체적 치유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다른 모든 축복과 같이, 속죄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명백하게 말하자면, 육체의 치유는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과 깊게 관련돼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땅의 인간들에게 모든 영적 축복을 허락하지 않는 것과 같은 원리로, 모든 육체적 축복을 허락하신 것은 아니다. (엡 1:3);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 속의 마지막을 장식할 종말을 기다린다, 이것은 인간에게 허락된 복된 소망으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하는 것이다. (딛 2:13).”[28]

우리는 현재와 미래의 하나님의 나라의 존재를 통해 영감을 얻고, 위로 받으며, 소망을 얻습니다. 이 시대는 현재 비통, 죄, 투쟁 그리고 죄악, 또한 다가올 하나님 나라의 조짐들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종말에는 기쁨과 거룩, 평화와 안식 그리고 위로만이 존재할 것입니다. 종말에 임할 하나님의 나라는 의로운 자들과 고침받은 자들의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29] 그리고 만물의 질서가 변화받고 고침받아 그들 본연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며,[30] 인간들은 예수의 부활을 입고 새롭게 변화받은 존재로 살아갈 것이며,[31]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것입니다.[32] 그리고 이 회복은 성경 속 결혼 잔치와 관련이 있습니다.[33] 이러한 현재와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들은 절망과 고군분투하는 삶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소망을 주며, 계속해서 하나님 나라의 복된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 줍니다. 

치유의 본질과 영역

교회는 치유와 그의 속죄 신학과의 관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개발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마태는 그의 청중들에게 치유의 기적은 예수의 죽음이라는 큰 대가를 통해 하나님이 제공한 예수의 사역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렸다 (8:17).”라고 서술한 크레이그 키너 (Craig Keener)의 견해가 옳다면, 최종적 치유는 종말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는 사실의 인지아래 속죄와 연관된 치유의 다양한 견해들을 (그리고, 예수님의 성육신의 삶 가운데서 보여줬던 인간에 대한 동정심들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대속과 수난, 죽음과 부활을 통한 육체적, 정신적, 관계적, 영적 치유 그리고 그 외 다른 치유를 경험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탐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속죄의 주된 기능은 죄 사함으로써, 개인과 교회, 그리고 모든 창조 질서들을 죄악과 죄책감으로부터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임은 변함이 없지만, 속죄 신학이 치유의 본질과 영역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확장시켜줄 뿐만 아니라 치유와 속죄의 관계, 성육신의 관계, 그리고 부활과의 관계에 대한 정의 또한 정립시켜줄 수 있다는 이점을 고려하여 치유신학과 함께 면밀하게 검토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육신의 질병으로부터의 고침이 속죄를 통해 모두에게 가능하다는 것을 살펴보았지만 아직 완전하게 끝나지 않은 하나님 나라의 특성을 고려할 때에, 치유가 현재 이 땅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결론을 낼 수 있었습니다. 궁극적 치유는 오직 종말에 다다랐을때가 되어서야 만 보증될 수 있습니다. 더글라스 무 (Douglas Moo)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으로 모든 병든 자들에게 치유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마태복음 혹은 복음서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치유가 현재의 삶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암시하는 구절을 찾을 수 없다. 신약은 육체의 죽음에 대한 승리가 아직 오직 않았듯이 육체적 질병을 넘어서는 승리 또한 부활의 때가 올 때까지 대부분의 신자들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증언하고 있다.”[34]

궁극적인 육체의 질병으로부터의 치유가 우리 육체의 부활에 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이 치유하시기를 선택하신다면 현재의 삶에서도 질병의 치유가 가능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아픈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육체의 질병으로부터의 치유에 집중하는 것을 넘어, 속죄와 치유의 본질의 관계를 좀 더 넓은 의미 (죄로부터의 해방, 관계의 회복, 중독으로부터의 자유, 우상숭배에 대한 거부, 자유, 평안, 기쁨 등)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음을 잊어서도 안될 것입니다.  

현재 진행형이자 아직 완전히 오지 않은 특성을 가진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전조 혹은 증인으로써, 교회는 예수님과 세상을 향한 그의 종말론적 사명을 위해 치유사역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삶과 윤리의 조화 가운데, 전도와 봉사 가운데, 하나님의 치유 은사를 성실히 추구하기를 부름받았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좀 더 성숙하고 성경적인 접근과 그의 현재적, 미래적 측면의 깊은 이해를 가져야만, 그들의 역량의 다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This piece was first published in The Pacific Journal of Baptist Research (Vol 8, No 1, May 2013). It can be found online here: http://repository.divinity.edu.au/1674/1/may_2013_final__graham_hill.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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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i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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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ham Hill

Graham Hill (PhD) teaches pastoral studies and applied theology at Morling College in Sydney, Australia. He is the Founding Director of The GlobalChurch Project – www.theglobalchurchproject.com. Graham has written 6 books. His latest three books are “GlobalChurch: Reshaping Our Conversations, Renewing Our Mission, Revitalizing Our Churches” (InterVarsity Press, 2016), “Salt, Light, and a City, Second Edition: Ecclesiology for the Global Missional Community: Volume 1, Western Voices” (Cascade, 2017), and a co-authored book with Grace Ji-Sun Kim called “Healing Our Broken Humanity: Practices for Revitalizing the Church and Renewing the World” (InterVarsity Press, 2018)

© 2016 All rights reserved. Copying and republishing this article on other Web sites, or in any other place, without written permission is prohibited.

[1] M.J. Erickson, Christian Theology (Grand Rapids, MI: Baker, 1998). 836-39.

[2] All references are in the TNIV.

[3] John Oswalt, The Book of Isaiah: Chapters 40-66,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8). 7.

[4] Ibid. 9–10.

[5] Ibid. 287.

[6] Ibid. 386.

[7] John Goldingay, The Message of Isaiah 40-55: A Literary-Theological Commentary (London: T&T Clark, 2005). 503.

[8] John Oswalt, Isaiah: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From Biblical Text- to Contemporary Life, The Niv Application Commentary Series (Grand Rapids, MI: Zondervan, 2003). 585; John Goldingay, Isaiah, New International Biblical Commentary (Peabody, MA: Hendrickson, 2001). 304–5.

[9] Craig S. Keener, The Gospel of Matthew: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Grand Rapids, MI: Eerdmans, 2009). 61–71.

[10] Ibid. 258.

[11] Ibid. 270.

[12] Craig L. Blomberg, Matthew, vol. 22,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TN: Broadman, 1992). 145.

[13] A.B. Simpson, The Gospel of Healing (New York, NY: Christian Alliance, 1880)..

[14] Rowland V. Bingham and W.H. Griffith Thomas, The Bible and the Body: Healing in the Scriptures (Whitefish, MT: Kessinger, 2007)..

[15] Erickson, Christian Theology. 840.

[16] Donald A. Carson, Matthew,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Grand Rapids, MI: Zondervan, 1995). 205–7.

[17] Ibid. 207.

[18] Keener, The Gospel of Matthew. 273.

[19] Donald A. Hagner, Matthew 1–13, ed. Bruce M. Metzger, vol. 33A, Word Biblical Commentary (Nashville, TN: Thomas Nelson, 2000). 211.

[20] W. D. Davies and Dale C. Allison, A Critical and Exegetical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Saint Matthew, vol. II: Commentary on Matthew VIII–XVIII,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London: T&T Clark, 2004). 38.

[21] Hagner, Matthew 1–13, 33A. 211.

[22] J. Ramsey Michaels, 1 Peter, ed. David A. Hubbard and Glenn W. Barkeribid. (Waco, TX: Word, 1989). 149.

[23] Paul J. Achtemeier and Eldon Jay Epp, 1 Peter: A Commentary on First Peter, Hermeneia: A Critical and Historical Commentary on the Bible (Minneapolis, MI: Fortress, 1996). 203.

[24] Peter H. Davids, The First Epistle of Peter,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Eerdmans, 1990). 113.

[25] Carson, Matthew. 207.

[26] Blomberg, Matthew, 22. 145.

[27] John Dickson, A Spectator’s Guide to Jesus: An Introduction to the Man from Nazareth (Sydney: Blue Bottle, 2005). 44–45.

[28] W. Kelly Bokovay, “The Relationship of Physical Healing to the Atonement,” Didaskalia 3, no. 1 (1991). 37.

[29]Matthew 5:20; 7:21; Mark.9:47.

[30]Matthew 19:28.

[31]Luke 20:34f.

[32]Matthew 5:8; 25:21, 23.

[33]Matthew 22:1-14; 25:1-12.

[34] Douglas J. Moo, “Divine Healing in the Health and Wealth Gospel,” Trinity Journal 9, no. 2 (1988).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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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ham Joseph Hill

Rev. Assoc. Professor Graham Joseph Hill OAM PhD serves as Mission Catalyst for Church Planting and Missional Renewal with the Uniting Church in NSW and ACT, Australia. Previously, he was the Principal of Stirling Theological College (Melbourne) and the Vice-Principal and Provost of Morling Theological College (Sydney). Graham is Adjunct Research Fellow and Associate Professor at Charles Sturt University, and research associate at the Centre for the Study of Global Christianity at 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 in the USA. Graham received the Medal of the Order of Australia (OAM) in 2024 for “service to theological education in Australia.” He has planted and pastored churches and been in ministry since 1988. Graham is the author or editor of 18 books. Graham writes at grahamjosephhill.com

Graham's qualifications include: OAM, Honours Diploma of Ministry (SCD), Bachelor of Theology (SCD), Master of Theology (Notre Dame), and Doctor of Philosophy (Flinders).

See ORCID publication record: https://orcid.org/0000-0002-6532-8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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